top of page

나주의 문과 창

죽림사 문살무늬 승탑

제작 시기 알 수 없음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풍림죽림길 255

저 돌문을 열면, 이름 모를 한 승려의 깨달음이 들어 있을까?

죽림사로 접어드는 길 오른쪽엔 승탑 다섯 기가 나란히 서 있다. 그 모습은 작고 초라하기까지 하여 쉽게 눈길을 끌지 못한다. 하지만 찬찬히 바라보면 거기에는 가 볍게 스치고 지나칠 수 없는 묵직한 세월의 무게가 얹혀있다. 다들 매우 낡고 닳아 있으며, 부재도 온전히 갖춰져 있지 않아 보인다.

그 가운데, 작은 크기의 육면체 돌 위에 지붕돌이 얹어진 승탑이 있는데, 거기에는 문이 새겨져 있다. 다른 승탑에서도 더러 문이 표현된 경우를 볼 수 있지만 그것들은 단순히 네모 두 개를 나란히 새긴 형태로, 이처럼 문살을 촘촘히 표현한 것은 보기 드물다. 두 짝의 여닫이문이고, 한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양의 띠살 문살이다. 그 모습이 정겹다. 가운데엔 자물쇠도 새겼다.

그런데 여기에 왜 문을 새겼을까? 불감을 표현한 것일까? 원래 몸통을 이루는 육면체의 돌과 지붕돌 둘로만 이뤄진 것일까? 아니면 더 있던 부재가 사라지고 이것만 남은 것은 아닐까? 아무런 글귀도 새겨져 있지 않아 누구의 승탑인지 알 수가 없다. 저 문을 열어보고 싶다. 거기에 큰 깨우침이 들어있을 것만 같아서.

스크린샷 2019-05-27 오후 4.58.21.png
스크린샷 2019-05-27 오후 4.43.56.png
다보사 꽃살문

조선 시대 후기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87호 - 대웅전

전라남도 나주시 금성산길 83

곱게 꽃으로 피어 반기는 문

화려하고 고운 것이 흔한 요즈음, 사람들에게 이 꽃살문은 초라해 보일 수 있다. 더구나 오래되지 않은 시기에 다시 그려진 단청이 정교하지도, 원래대로 칠해진 것 같지도 않다. 문살도 아주 낡고, 떨어져 나간 부분들도 있다. 그러나 이 대웅전이 지어진 시절을 상상해보면 여기에 들인 공이 참 대단하다.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대웅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자그마한 크기로, 본래는 신노사(薪老寺, 나주시 문평면)에 있던 것을 그 절이 폐사되면서 1884년에 다보사로 옮겨왔다고 한다.

대웅전은 앞쪽 한 칸씩 쌍여닫이문이 나란하게 세 쌍이 있다. 흔히 절집의 어간문은 위엄이 느껴지도록 더욱 화려하게 꾸미거나 꽃살문으로 만들건만, 이곳 대웅전 어간문은 도리어 양옆의 문에 비해 소박하게 만들어져 있다. 문의 높이만 더 길 뿐, 금강저 모양의 문살을 반복 교차하여 만들어진 단조롭고 절제된 모습을 하고 있다. 이에 견주어, 찾아온 불자나 손님이 드나드는 양쪽 문은, 문살에 여러 가지 꽃과 이파리로 빼곡히 장식되어 있다. 꽃과 잎의 배치에 나름의 질서가 있지만, 각각의 모양은 조금씩 자유롭게 다르다.

왼쪽 꽃문은, 문살이 교차하는 부분마다 연잎으로 보이는 갖가지 모양의 잎들이 배치되어 있고, 거기에 활짝 핀 꽃과 아직 머금은 꽃이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다. 양 문짝에는 잎과 꽃이 비슷한 배치를 하고 있지만 서로 조금씩 다르다.

오른쪽 꽃문은, 윗부분에 생김새와 크기가 다른 세 가지 꽃 모양이 세 줄 나란히 새겨져 있고, 그 아래 나머지 부분은 모란의 잎과 꽃으로 가득 표현되어 있다.

스크린샷 2019-05-27 오후 5.19.41.png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