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가 묻는다
- 나나
- 2019년 5월 25일
- 3분 분량
ESSAY
나해철 시인
나는 평생 홍어에 중독된 사람이 틀림없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반드시 홍어 생각이 나는 것이다. 톡쏘는 잘 발효된 홍어회나 홍어애탕이 애타게 그리워지는 것이다.
홍어는 음식이라기 보다는 몸 속을 도는 또 다른 피
나주를 흐르는 영산강이 맑고 푸르게 흐르던 시절의 일이니,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고 녹차 를 마실 때의 이야기다. 강에는 홍어와 멸치젓, 황시리젓들을 실은 배가 목포 쪽에서 올라와 영산포구에 닻을 내리고, 나주 읍내를 부는 바람에 젓갈 냄새가 나면, 마을 사람들이 젓동이를 들고 포구로 가서 젓을 사고, 홍어를 구해오게 된다. 묘한 흥분이 읍내를 떠돌고 마치 읍 전체가 무슨 비밀스런 잔치를 벌이는 것 같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 배에 실려 있던 홍어를 갓난이 때부터 이유식이 끝나자마자 먹기 시작했으니, 나주 사람인 나에게 홍어는 음식이라기보다는 몸속을 도는 또 다른 피라고나 할 것이다. 물론 그때의 홍어는 전부 흑산도 홍어였고 흑산도에서 잡혀 목포를 거쳐 영산포항까지 배로 이동해오면서 발효가 아주 잘 된, 강력한 맛을 내는 것이었다. 큰집의 잔칫날이나 제삿날에 부엌에서 일 하시는 어머니 옆에 기웃거리면 못이기는 척 김치에 돼지고기와 홍어를 한 점 싸서 입에 넣어주시고는 다른 데 가서 놀라고 손짓을 하시곤 했다.
홍어는 나주사람들 애경사에서 가장 중요한 먹거리
필자의 혼인 예식 경우에는 식을 신식 예식장에서 치렀으나 동시에 시골집 마당에 차일을 치고 손님들을 대접하는 옛날식이 더해졌었다. 그때 어머니께서 주로 마련한 것이 흑산도 홍어였다. 그 축제를 경험한 분들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풍족하게 먹을 수 있었던 그때의 맛있는 홍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끝없이 다시 나오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무한정 리필되는 홍어회에 큰 감동을 하였다고 이야기들을 하는 것이다. 어머니가 그때 수십 짝의 홍어를 손님들께 내어놓았다는 것을 그 후에 알게 되었다. 이처럼 홍어는 나주 사람들의 애경사에서 결코 빠져서는 안되는 가장 중요한 먹거리였다.
홍어집 약속은 거리나 시간에 상관없이 즐거워
강력한 자극은 자주 접하면 중독이 된다. 나는 평생 홍어에 중독된 사람이 틀림없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반드시 홍어 생각이 나는 것이다. 톡 쏘는 잘 발효된 홍어회나 홍어애탕이 애타게 그리워지는 것이다. 옛날처럼 보릿잎을 넣은 홍어애탕은 아니지만 강렬하고 개운한 그 맛에 어떤 날은 냄비를 가지고 가 홍어애탕을 집으로 사들고 오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며칠 동안은 집으로 퇴근하는 시간이 즐거운 것이다. 만나고자 하는 친구가 홍어집에서 보자고 하면 약속 장소의 거리나 시간 관계에 무리가 가더라도 꼭 가고야 마는 것이다. 이를테면 서울 남서쪽 끝인 구로구 구로동에서 서울의 북동쪽 끝인 강북구 수유동 수유리 4.19탑 부근까지도 가는 것이다. (그 동네에 종교 및 공동체 전문기자인 조현 기자가 살고 있어, 시인이고 기자인 절친한 친구 고광헌이 거기까지 가서 같이 만나자고 하는 것이다. 내가 주저하고 머뭇거리면 그때 그 동네의 홍어집을 약속 장소 로 꺼내놓는 것이다.)
힘이 들고 지칠 때 홍어애탕은 커다란 위로
따로 살고 계시는 어머니를 뵈러 가서도 어머니가 밥상 위에 홍어를 내어놓으시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주 삼도리가 친정이신 어머니와 나주 영산포 개산 밑이 고향이신 아버지가 만나 결혼을 하셨으니 두 분은 그야말로 나주의 홍어와 함께 자라나신 분들이고, 필자는 그런 유전인자에 더해 어려서부터 끊임없이 홍어를 가까이해왔기 때문에 홍어는 나에게는 음식 이상의 어떤 것이 되었다. 몇 년 전에 나주에 문학 강연이 있어 고향에 오랜만에 내려갔다. 강연을 마치고 담당자들과 식사를 하게 됐는데, 당연히 홍어집에서 홍어애탕을 먹는구나 했다. 그런데 강연 주최 측에서 소고기집으로 정하여 가는 것이었다. 초대를 받는 입장이라 그냥 따라갔으나 참 아쉬운 일이었다. 대화중에 실무를 맡은 관계자들이 나주에 발령을 받아 근무하는 다른 지역 분들이고 젊은 여성분들이어서 그분들을 배려하여 소고기집으로 정했다는 말을 들었다. 홍어를 애모하는 나의 입장으로서는 참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나주에서 근무하는 동안 잘 발효된 홍어맛을 배우고 익혀서 잘 알게 되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힘이 들고 지칠 때 홍어회와 홍어애탕이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될 터인데…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홍어는 발효가 될수록 깊은 토속적이고 민중적이고, 혁명적이고, 대지의 거름 같은 향을 지니고, 마음을 위로하고, 몸을 편케 하고…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먹거리이다.
내 시집 속의 시들은 영산강과 홍어가 만들어 낸 것
홍어는 발효가 될수록 깊은, (토속적이고 민중적이고 혁명적이고, 대지의 거름 같은 향을 지니고, 마음을 위로하고, 몸을 편케 하고…) 맛을 내고,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먹거리이다. 어쨌든지 홍어는 나에게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내 몸에 쌓인 수많은 시간과 그때마다 인연이 되었던 사람들이 거기 들어 있다. 영산강과 나주들판이 숨 쉬고 있고, 개산(가야산)과 금성산이 홍어 속에 다소곳이 솟아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필자의 시집 속의 시들은 영산강과 홍어가 만들어 낸 것이다.
영산강처럼 시가 끊이지 않고 구비지게, 구성지게, 흐르기를 바랐고, 홍어처럼 토속적인 강렬한 힘이 들어있어서 한 번 경험하면 결코 잊을 수 없는 노래이고 시가이길 바랐다.
너희가 홍어를 아느냐
영산포구 근처가 홍어의 거리가 되어 있는 것은 단순한 도시 특성화의 결과이거나, 오로지 시민의 소득 증대가 목표인 사업인 것만은 아니다. 나주에 영산강이 존재하고 있는 이유와 같고, 나주 사람들의 정신과 정서가 드러난 문화와 역사의 장이 펼쳐진 것이다. (나주에서 새로이 살게 되거나, 나주에서 일을 하게 되는 분들은 의무적으로 홍어를 배우고 사랑하여야 된다고 생각한다. 나주라는 말에는 이미 영산강과 홍어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근자에 막되고, 근거 없고, 반인륜적인 지역감정으로 전라도 지역과 전라도 사람들을 '홍어'라고 지칭하는 무리들이 있다고 하는데 큰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홍어는 항상 묻고 있다. "너희가 홍어를 아느냐?"고.

나해철 시인은 1956년 나주 영산포에서 태어났다. 1976년 전국 대학생 공모전인 천마문학상을 수상했고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시집 '무등에 올라' '동해일기' '그대를 부르는 순간만 꽃이 되는' '아름다운 손' '긴사랑' '꽃길 삼만리' '영원한 죄 영원한 슬픔' 등이 있다. 5월시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한국작가회의 이사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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